나카야마데라(中山寺)는, 아오바야마(靑葉山)의 동쪽 해발 약100미터의 높이에 있는 진언종 오무로파(御室派)의 절입니다. 이 절 소장의 문서에 의하면, 나라(奈良)시대의 대동 2년(807년)에 하쿠산(白山)를 연 다이토쿠(大德) 야수시죠우(泰澄) 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본당(本堂;혼도)는 무로마치(室町)시대 초기의 야스나가(康永) 2년(1343년)에 재건된 것입니다. 이리모야쓰쿠리(入母屋造)라고 하는 건축 양식으로, 지붕은 히와다(檜皮) 로 덮어져 있습니다. 내부는 진언종의 특징인 「내진」·「외진」·「 협진」의 3개로 나뉘어진 구조로 되고 있어 국가지정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고 있습니다.
본존(本尊)을 안치하는 감실 (2겹의 미다지문이 있는 물건 넣는 곳)도, 에이로쿠(永祿) 4년(1561년)에 만들어진 오래 된 것으로, 마찬가지로 중요 문화재로 되어 있습니다. 본존의 마두관음은 해상교통의 안전을 지켜 본존으로서 옛부터 신앙을 키워 왔습니다. 얼굴이 세개로 팔이 8개 있으며, 머리위에 말의 상반신을 올려놓고 양겨드랑이에는 부처상을 올려놓고 있습니다. 팔 앞에서 마쿠인(馬口印)라고 말하는 손가락의 형을 하고 있고, 오른쪽 무릎을 조금 높게 올려서 발뒤꿈치를 보여주고, 연꽃좌라고 말하는 대좌 위에 앉아 있습니다. 높이 79.3cm의 히노키재(桧材) 의 기나무조형(寄木造り)으로 가마쿠라(鎌倉) 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국가지정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고 있습니다.
작가는 가마쿠라(鎌倉) 시대의 유명한 스님이신 탄케이(湛慶) 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16년에 한 번만 공개되는 비불이며, 다음 번 공개는 2028년경의로 예정이 되고 있습니다. 한편 아오바야마(靑葉山)의 주변에는 마두관음상 몇개가 모셔져 있습니다만, 일본해에서 난파했을 때에 유목에서 구제된 해민(海民)들이 해상 교통안전을 기원하면서 그 유목으로 불상을 안치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산문(山門)에는 2체의 금강역사(金剛力士)상이 설치되고 있습니다. 입을 벌린 분이 아가타(阿形; 불교에서 사물의 시작을 의미) 입을 다문 분이 운교(吽形; 불교에서 사물의 마지막을 의미)형입니다. 본존과 같이 탄게이(湛慶)가 새긴 것라고 전해지고 있어 마찬가지로 국가의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고 있습니다. 이 두 체의 상은 헤이세이3년 (1991년 런던의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에서 일반의 사람들에게 공개되어 칭찬받았습니다.
이외에도 이 절은 불명대왕(不明大王)비사문천(毘沙門天)등 카마쿠라시대(鎌倉)
후기에 만들어진 불상이 있으며 모두 다카하마쵸(高浜町)의 지정 문화재로 되어져 있습니다. 나카야마데라(中山寺)의 문화재군으로는 당시의 대륙과 와카사(若狹)의 교역의 상태를 엿 볼수 있으며, 또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신앙심을 상상시켜 줍니다. 혼도(本堂) 근처에 세워진 지불당에는 중국의 대혁명가「쑨원」과 함께 저명한 문학자 「루쉰(노신)」의 직필서가 걸려 있습니다. 쇼와(昭和)58년(1983년)에 지금의 히로노미야(浩 宮) 황태자가 여기를 방문적이 적이 있습니다만, 지금도 그 당시 그대로 방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또 경내에는 보요암(望洋庵;망양암) 이라 명명된 다실이 있습니다. 에도(江戶) 시대에 세워진 가야부키(芽葺)의 다실이 있었습니다만, 태풍으로 인해 파손되어 현재의 것은 헤이세이 22년(2010년)에 재건된 것입니다. 다도 에서는「의자에 앉으면서 차를 마신다」라고 하는 작법이 있으며 류레이시키(立礼式)라고 합니다. 정좌는 하지 않습니다만, 거기에서 사용되는 도구나 작법은 통상의 다도와 같습니다. 보요암(望洋庵)은 류레이시키(立礼式) 다실이므로 정좌가 서투르는 외국분도 부담없이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